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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중세예술 - 개념화

중세예술의 개념화 : 기하학적 단순성


우선 읽는다는 행위는 관찰 등의 사실적 수단과는 다른 관념적 행위이다. 더욱이 메시지 전달이라는 표현의 목적은 순수 예술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기에 모방론에 입각한 사실적인가 라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성서의 해독을 통해 예술가가 인식한 것을 형상화하는 창작 행위에 있어 해부학과 원근법 등을 통한 합리적 형상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형상이 어떻든 간에 말씀의 내용만 충실히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 시대의 예술작품은 헬레니즘 시대에 비해 무척 조악하게 보인다.

 <사도>, 1090년경. 생 세르넹(Saint-Sernin) 성당의 벽면 부조, 툴루즈(Toulouse)


<사도>라는 작품을 보면 해부학이나 비례법이 결코 사실적이며 합리적이지 않다. 주인공의 얼굴과 이목구비는 이 인물의 개성이 어떤지를 알려주지 않으며, 얼굴과 머리의 구분도 불명확하다. 특히 들고 있는 오른팔이 몸통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 매우 어색하며 손과 손가락의 크기 또한 너무 크다. 또 옷 아래의 발과 발목은 대충 마무리가 된 것 같다. 염주알처럼 표현되어 마치 모자를 쓴 듯한 머리카락과 더불어 옷의 규칙적인 주름도 실제의 그 모습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모든 부분들이 이 인물의 사실적 이미지보다는 보편적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인물의 개성 등 인간적 특성보다는 사도로서의 상징적 이미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바로 세속적인 인간의 이미지 즉 사실적인 한 개인의 모습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성한 사명을 띤 이미지를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작가는 해부학과 비례법, 콘트라포스토 등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도구에 의해 나타난 사실적인 모습의 인물보다는 사도로서의 암시적 의미가 더 중요했기에, 그 의미를 표현하는데 부적절한 요소는 모두 제거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이 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공된 인물로 모든 인간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런 모습의 인간을 보편적 인간이라고 한다. 그 얼굴의 둥근 모습은 얼굴의 개념이다. 우리는 동그란 얼굴, 삼각형 얼굴, 사각형 얼굴 등 수많은 형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다양한 모습의 얼굴을 단 하나의 도형으로 개념화 한다면 바로 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사도의 얼굴은 원형이다. 몸통 또한 가늘거나 뚱뚱한 모습의 다양한 인간 몸매를 최소한의 도형으로 환원시킨다면 원통이다. 그래서 이 주인공의 몸은 원통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이처럼 이 인물의 모든 부분은 한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개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개념적이며 보편적 형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개념적 형상은 한 사람의 사실적 이미지로서의 개성보다는 하느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개념적 형상은 상징적인가?

 샤르트르(Chartres) 대성당의 벽면 조각상, 1145-1170년경

이런 개념적 형상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적 해석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해 만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지적 노력에 의해 영원불변의 법칙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위의 <사도>의 경우, 천태양상의 얼굴 형상이 지닌 공통점을 파악하고 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이목구비를 위치시키는 행위는 사실적 형상을 표현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인지된 대상의 본질이라는 보다 정신적 실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개념적 행위라 일컬으며, 그 결과를 개념적 형상이라고 한다.


샤르트르를 비롯한 중세의 성당 벽면에 나타난 기하학적 구조와 더불어 <사도>에 표현된 형상은 바로 이런 개념 활동이라는 인간의 지적 작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런 예술가의 행위를 우리는 관념행위라 하고, 이런 창작의 과정을 통해 나타난 예술작품을 사실적 작품과 다른 차원의 관념적 작품이라고 한다.

 

  치마부에, <옥좌위의 성모>, 목판 위에 템페라. 427 x 280 cm, 파리, 루브르박물관

예를 들어 치마부에의 <옥좌 위의 성모>를 보자. 근사한 옥좌 위에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앉아있다. 그러나 그 형상에서 사실성을 식별하기가 어렵다. 성모의 형상은 나무판에 조각을 한 듯 딱딱한 형상이고, 아기 예수 또한 아이의 해부학이 아니라 늠름한 어른의 해부학으로 묘사되어 애늙은이처럼 보인다. 이는 중세의 미학이 전혀 사실성에 기초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성모의 위상과 성인으로서의 예수의 이미지 그리고 절대적 믿음에 기초한 그의 생활이 주요 테마였기에, 사실적 모습이란 전혀 중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위에 성모자를 경배하는 천사들 역시 사실적인 원근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까운 것은 낮고 먼 것은 높이 그린다는 관념적 원근법에 의해 표현되었을 뿐이다.


추상 : 정신적 아름다움의 표현?

이처럼 신석기 시대와 고대 이집트 그리고 서구의 중세 시대에 주를 이룬 표현 기법은 사실성보다는 인간 관념에 의한 표현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대상 지닌 본질을 파악하는 인간의 지적 작용이 수반되는 것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인지된 결과는 원래의 대상과는 다른 양상을 지닌다.


이처럼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적 행위를 추상이라고 하는데, 그 추상에 의한 형상은 매우 단순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구상적 이미지를 전혀 취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실적 표현이 인간의 이성에 의해 파악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관념적 표현은 어떤 메시지 전달을 위한 형상으로 다분히 정신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