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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중세예술의 기하학

 중세 예술의 기하학 :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의


중세 예술의 높고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건축 공법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 건축 공법은 하느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누적된 경험과 깊은 지식 즉 인간의 이성에 의한 것으로,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이 더욱 발전적이며 과학적인 기하학을 만들게 한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기하학적 평면도>


중세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사물은 완전한 비례를 지닐 때 가장 아름답다”라고 하였다. 언뜻 보면 시각적 아름다움 즉 해부학과 관찰에 의한 헬레니즘의 예술적 이상을 지칭한 말인 것 같다. 그러나 중세의 미적 이상은 헬레니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아퀴나스의 이 말은 중세의 미적 이상을 드러낸 말로, 모든 사물이라 함은 예술 작품도 포함하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완전한 비례란 대성당을 지을 수 있는 이성의 기하학을 말하며, 아름답다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의미이다. 즉 중세 예술의 목적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즉 성서의 내용을 표현하고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드러낸다는 것은 성당의 각 부분에 그 말씀을 기호화한 형상을 만들고 성당과 같은 하느님의 집을 지어 봉헌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중세예술의 궁극 목적은 말씀 전달이며 하느님의 경배인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삼은 것이 바로 기하학을 창출해낸 인간의 이성이다. 그러니 아퀴나스의 말은 하느님께 인간의 이성을 바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예술이란 인간의 이성을 수단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형상을 통해 어떤 말씀 즉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을 이코노그래피(iconography)라 한다. 이코노 즉 아이콘이란 의미기호라는 뜻이며 그래피란 형상 아닌가? 즉 모든 형상이 어떤 의미내용을 담고 있다는 예술의 상징성을 드러낸 말이다.


이처럼 중세의 예술은 이코노그래피이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장식적 예술이 전혀 아닌 것이다. 이런 예술의 이상은 헬레니즘 시대의 이상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중세의 그림과 조각은 상세하고 세밀한 형상 즉 시각적 사실성(visual reality)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헬레니즘의 사실적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과 메시지의 표현이 일차적인 목적이기에, 예술가는 일단 성서를 깊이 해독해야 한다. 당시 성서는 라틴어로 쓰였으며 대부분의 서민들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성서의 메시지를 주일 성당의 신부 강론을 통해서 밖에는 전달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그 말씀을 형상화해서 성당의 내외에 장식함으로써 일반 서민들이 일상의 생활에서 그 형상을 통해 말씀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오툉(Autun) 대성당의 <최후의 심판>, 1130-1135년경 >


예를 들어 <최후의 심판>은 성서의 주된 메시지이다. 이는 세상의 종말이 오면 메시아가 나타나 살아생전 인간 영혼의 무게를 판별해 천국과 지옥행이라는 운명이 정해진다는 것으로, 모든 사람은 살아서 하느님의 규율에 따라 독실한 신앙생활과 아울러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실상 말씀으로 밖에는 인지되지 않는다. 즉 그 최후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 메시지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토대로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예술가는 성서를 읽고 해독하여 이를 형상화하면서 그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창작의 과정을 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