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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콘트라포스토와 해부학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이 작품에 나타난 늘씬한 비너스의 몸매가 상당히 율동적이다. 다시 말해 비너스의 코끝으로부터 양쪽 다리의 중간으로 흐르는 선을 기준으로 해서 몸이 S자로 휘어져 있는 것이다. 즉 머리부분과 허리부분을 중심으로 몸이 두 번 꺾인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S자의 커브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비너스가 서있는 태도를 보면 한쪽 다리에 몸무게의 거의 대부분을 싣고 있다. 그래서 한쪽 다리는 힘이 들어가 있고, 무릎이 구부러진 다른 한쪽은 힘이 전혀 가해지지 않았다. S자의 커브는 바로 이런 신체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한쪽 다리에 대부분의 무게가 실려 신체가 S자 곡선의 율동미를 구성하는 포즈를 콘트라포스토라고 한다. 부동의 자세보다 움직이는 율동의 자세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자명한 사실로, 이 포즈의 발견 역시 신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당시 그리스인들의 조형적 의도를 보이는 것이다.


C. 해부학


또한 <밀로의 비너스>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완벽한 해부학이다. 이목구비와 얼굴의 모습, 머리카락 그리고 목에 표현된 두 선의 주름과 어깨의 폭, 가슴과 그 아래로 흐르는 배 위의 복근구조와 선, 약간 볼록한 아랫배의 모습, 옷 주름과 옷 속의 다리 형태와 길이 등이 완벽한 해부학, 즉 철저한 관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조형성은 완전한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미를 표현하는 일종의 법칙이다. 이런 기법들을 일컬어 캐논(Canon)이라고 했으며, 이 캐논에 의해 표현된 완전한 아름다움의 실체인 <밀로의 비너스>는 바로 영원한 미의 규범으로서의 고전인 것이다.

 

 

작품에 도입된 이중적 철학사상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완전성을 향한 기법을 토대로 표현된 밀로의 비너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우선 플라톤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곳이 비너스의 상체 즉 허리 윗부분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나타난 곳이 하체 즉 허리 아랫부분이다. 다시 말해 상체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고 하체는 세속성과 관능성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 사상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비너스의 상체에 나타난 조형미

< 비너스(부분)>


일단 비너스의 상체에서 비너스 얼굴과 표정을 간과할 수 없다. 비너스 얼굴 표정을 보면 우선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이 코이다. 그 모양새가 단정하고 콧날이 오뚝한 것이 고집스런 내면, 즉 허영과 사치의 조류를 쫓지 않는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얇은 입술의 입은 작고 야무지게 다물어져 있는데, 이 역시 이 여인이 숭고한 성품의 소유자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런 비너스의 숭고한 내면의 세계가 눈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른바 눈을 마음의 창이라 한다. 비너스의 커다란 눈을 보면 세속적 욕망을 마음에 담지 않은 순수한 창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로 마음의 눈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얼굴이 결코 사치스럽지 않고 단정하게 정리된 머릿결과 합치하고 있다.

또한 목을 따라 내려오는 고운 선과 그 선이 머무는 두 가슴의 형태는 정삼각형 구조에 벌어짐과 올려짐의 각도가 그 크기와 아울러 가히 이상적이다. 이런 육체적 형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범접할 수 없는 격조와 우아함을 보이는 여인으로서 비너스의 고매한 정신  세계가 아니겠는가?

특히 이 여인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아주 맑고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형상을 통해 이 여인이 얼마나 정숙하고 기품이 있는 격조 높은 여인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최상의 아름다운 형식을 통해 여인의 이상적 아름다움 즉 정신의 이데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비너스의 하체에 나타난 조형미


그러나 이 여인의 허리 아랫부분을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허리가 상당히 굵고 아랫배가 충만하게 발달해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여인들의 신체적 생리적 기능 즉 아이의 생산과 관계가 있는 곳 아닌가?. 이 부분은 옷에 가려진 커다란 엉덩이와 굵은 허벅지로 연결되면서, 생명의 잉태와 생산이라는 여인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가시적인 것 뿐 아니라 그 이면의 본질까지도 의미한다고 했던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헬레니즘 시대에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단순히 이지적 아름다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며 현실적 가치, 즉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너스의 아랫배는 실제 우리가 이상적으로 삼는 여인의 유연한 모습보다 더욱 풍만하고 발달되어 있다.

또한 허리에서 점차 부풀어 가는 S자 곡선과 풍만한 그리고 관능적으로 보이는 엉덩이와 그에 의한 좀 뒤틀린 동세, 배꼽아래의 부풀고 부드러운 살결, 옷 속에 감추어진 풍만한 육체미, 이런 것들이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세속적인 관능과 육체의 가치를 동시에 보여주는 경향인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밀로의 비너스>는 상체와 하체가 서로 다른 이중적 철학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숭고한 여인의 이미지와 관능적 여인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관능적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경직되어진 형상보다는 움직임과 율동이 있는 콘트라포스토의 조형성을 활용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 조형적이며 해부학적, 철학적 특성에서 당시의 인간의 육체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려는 시대 열망을 보여준 걸작인 것이며, 이러한 미를 창출한 것이 바로 인간의 이성으로 헬레니즘의 인간중심적 사고를 확인할 수 있다.


(3) 헬레니즘 시대 미의 실체 : 선의 가치 추구


그렇다면 왜 고대 그리스인들은 가장 완벽한 균형의 신체 표현을 목표로 삼고 이를 조형적으로 형상화시켰는가?

이는 당시의 완전성을 지향하는 철학적인 경향 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활관과도  연관이 있다. 다시 말해 <밀로의 비너스>에 나타난 인간 육체의 형상을 절대미 즉 미의 이데아가 형상화된 것으로 본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지고의 형식미를 통해 숭고한 정신과 사유의 세계를 지니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예술의 아름다움이란 단지 눈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善)과 도덕이라는 인간의 내면 즉 정신과 관련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그릇에 훌륭한 음식이 담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아름다운 육체를 통해 건전한 정신을 수양했던 것처럼, 조형적 아름다움 역시 인간의 순수하고 고양된 정신체계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그 정신적 실체인 것이다.


* 진선미 삼위일체


이와 같이 미(美)가 선(善)의 관념을 나타낼 때, 즉 아름다움과 도덕성이 서로 통일되어 원만한 조화를 이룰 때, 예술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즉 진(眞)의 가치로서 예술의 진실이란 시각적 아름다움, 이데아의 현시로서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에게 도덕적 관념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 시대의 예술 이념을 진선미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목적으로 미의 이데아를 실현한 헬레니즘시대 예술은 이후에 나타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전형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전형으로, 영원한 모범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을 고전이라고 한다. 그래서 흔히 예술에 있어서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헬레니즘 시대의 예술, 조금 더 광범위하게 이야기하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예술 정신과 그 작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잠자는 비너스>

 

<샘>

 

 <청동시대>

 

고대 그리스 예술 특히 헬레니즘 예술을 고전으로 간주하는 관점으로 인해, 예술 이념과 형상이 전혀 다른 중세 1000년을 예술의 암흑기라 부르며, 그 이후 15세기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예술이 고대 그리스 정신을 근거로 삼기에 이를 르네상스(Renaissance)라 부른다. 르네상스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재탄생, 부활이라는 의미로, 바로 고대 정신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예술이 가장 이상적인 소재로 삼은 것이 인간의 모습이며, 신들의 모습과 행동거지를 인간 세계와 동일하게 표현한 것, 혹은 예술이나 신화 등을 통해 인간의 정신 즉 도덕을 중시한 것으로 보아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는 다분히 인간 중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인간 중심적 사고가 신중심의 중세를 거치면서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출현하는 것이기에, 이 시기를 르네상스 즉 부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인간중심사상을 좀더 극찬해서 인문주의 혹은 문예부흥으로 기술하기도 한다.

또한 그 후 17세기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고전주의, 더 나아가서는 나폴레옹 정권과 함께 태동하는 신고전주의라는 이름 역시 헬레니즘 즉 고전정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