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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허영한교수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

고전주의의 오스트리아

1750년 바로크 시대의 마감과 함께 독일어권 국가들이 중심 역할을 맡았다.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주요 활동 무대로 유럽 최고의 음악 도시였다. 13세기부터 시작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및 독일 지역의 통치는 16세기 카를 5세의 등장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특히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등장으로 비엔나는 고전주의 음악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전주의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는 요제프 하이든은 비엔나 성가대 단원으로 음악의 길을 출발했으며 평생을 비엔나와 함께했고,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에서 출세의 길을 찾았으며, 독일 본에서 태어난 젊은 베토벤은 하이든과 공부하기 위해 비엔나로 유학을 했다.

이러한 연유에서 비엔나와 고전주의는 거의 동의어와 마찬가지로 인식되어 이 시기를 비엔나 고전주의라고도 한다.


낭만주의의 독일

독일 지역은 19세기에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다.  독일 최고의 문호인 괴테의 등장은 독일 문화가 이제는 더 이상 변방의 문화가 아님을 알리는 신호였다.  괴테로 대표되는 독일 문학의 발달은 독일 가곡(Lied)의 시대를 열었으며,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된 독일의 힘은 그대로 음악에도 반영되었다.


그 때에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가 등장한다

멘델스존은 베를린의 은행가 집안 출신으로 함부르크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 베를린에서 공부했고, 멘델스존의 괴테와 다섯 차례 만나면서 그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고, 독일 음악의 정수인 J. S. 바흐 음악의 부흥에 힘을 쏟았고. 괴테랑 만나서 이야기할 정도면 멘델스존도 문학으로써 대단함을 알 수있을 거 같다.

 

슈만이 주로 활동했던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 뒤셀도르프 중에 라이프치히는 J. S. Bach의 도시로, 드레스덴은 독일 오페라의 중심지로 음악 도시의 면모를 19세기에 갖추었다.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슈만은 최초의 음악잡지를 발간하는 등 작곡 이외에도 평론 활동을 겸한 작곡가였다. 문학은 모든 예술에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람스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주요 활동 무대로 삼으면서 낭만주의 작곡가 중에 고전주의 이상을 추구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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