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서양음악의 역사의 변화를 주도한 국가를 시대별로 알아보고, 또 각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의 삶과 작품을 간단히 살펴본다.
중세의 프랑스
프랑스의 문화는 수도인 파리가 독점적으로 발전시켰고.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중세의 중요한 음악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하다. 노트르담 성당중심으로 근대적의미의 작곡가란 개념에 맞는 작곡가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악보표기법(기보법)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 이전까지 악보는 단순히 기존의 음악을 보존하는 수단이었으나 작곡가들의 등장함으로써 악보는 창작의 결과물을 담는 역할이 되었다. 중세에 기악이 발달되지 못했던 이유가 그 시대의 악보가 많이 발견되지 못했고, 다양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악보는 그 시대의 창작의 결과물로써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중세 프랑스는 가톨릭교 전파에 큰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샤를르마뉴 대제(768-814)는 가톨릭을 유럽의 종교로 정착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톨릭의 교회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의 형성 과정에 프랑스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로마 교황청이 분열하던 14세기 초에 프랑스는 남부 도시인 아비뇽에 교황청을 두어 바티칸과 대립할 정도로 프랑스 왕권은 막강했다. 암튼 중세의 프랑스는 엄청난 놈였던 것이다. ^^
기욤 드 마쇼
< Machaut receiving Nature and three of her children, from an iluminated
Parisian manuscript of the 1350s>
중세의 최고 작곡가로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1377)를 이야기 하는데, 역시 프랑스 작곡가이고, 작곡가인 동시에 시인으로 종교음악과 세속음악 모두에 능통했다. 또 스스로 시인이었던 마쇼는 중세 프랑스 세속음악인 샹송의 가사와 노래 모두를 직접 창작한 음유시인이기도 하다. 마쇼가 만든 다성 샹송은 1400년대까지 전 유럽에서 인기를 끌며 국제적인 면모를 지녔으나, 1500년대에는 프랑스 고유의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마쇼는 최초로 4성부 미사곡을 작곡한 인물로도 유명하며, 그의 <노트르담> 미사는 최초라는 의미도 있지만 예술적 우수함으로 인해 지금도 전문가들 사이에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러니까, 미사중에 통상문 전체를 한 사람의 작곡가 손으로 완전 다성적 작품을 만들어 낸 최초의 작곡가 인 셈이다. 미사의 통상문은 말씀기도: 키리에(연민 찬가), 글로리아(영광 찬가) 봉헌기도: 크레도(신앙 선언), 상투스(감사 찬가), 야 뉴스 데이(평화의 찬가) 이렇게 구성이 된다
감상: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 중 “아뉴스데이”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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