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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반 고흐(Vincent van Gogh)

 반 고흐(Vincent van Gogh)


(1) 대상에 대한 심리상태의 표현


반 고흐 깊은 종교적 감흥 속에서 선교활동 등의 사회적 경력을 가지고 있으나, 렘브란트 이후 네덜란드의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오늘날 미술애호가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화가로 정평이 나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거듭한 끝에 화가가 될 결심을 굳힌 것이 27세 때로, 대부분 그의 작품들은 10년이라는 짧은 세월(1880-1890)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그의 그림은 강렬한 색채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 등 강하고 자극적인 표현력을 지닌 형태감을 보인다. 이런 형태는 그가 겪은 정신병의 고통 속에서 그에게 각인된 사물의 인상을 표현한 것으로, 심상(心像)을 화폭에 표현하는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길을 제시하게 된다.

 

 

<때때로 너무나도 강렬한 감정에 빠져 나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 마치 말을 할 때나 편지를 쓸 때 거침없이 단어들이 줄줄 쏟아져 나오듯이 붓놀림이 이루어지곤 한다.>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예경, p. 547)

 

 

반 고흐의 표현 형태는 사전에 고안되거나 계획된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상에 의해 순간적으로 촉발되는 심리상태에 의한 것이다. 순간적이며 격앙된 심리상태라는 정신세계를 여과 없이 직접 전달하기 위해서는 거의 본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원색과 거칠지만 자연스러운 붓놀림을 토대로 함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고흐 작품의 주된 소재는 그의 심리를 격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예를 들면 밀밭 등의 곡물밭이나 불꽃이 너울대는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 시든 꽃이나 보잘것없는 올리브 나뭇가지 등이었다.

 

 ☞ 그림 제시 :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해바라기 >


1888년 그는 ‘좀더 밝은 하늘 밑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싶은’ 갈망을 느끼고, ‘일본인들이 사물을 느끼고 그리는 방식’과 ‘색채의 완전한 효과에 열중하기 위해 남 프랑스의 아를(Arles)로 떠나게 된다. 거기에서 고갱을 만나 함께 작업하면서 각자의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으나, 결국 고흐의 정신분열증세로 그들의 관계는 악화된다.


이때부터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정신분열에 시달리며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파리 북부의 오베르 쉬르 와즈(Aubers sur Oise)에서 1890년 7월 스스로 총으로 목숨을 끊게 된다. 이렇듯 그를 괴롭힌 것은 정신과 신경증 발작이지만 그의 창작열을 불태운 것 역시 이 정신 분열증세로, 세상을 여과되지 않은 신선한 시선으로 바라보아 자연과 사물의 순수한 형태를 화면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2) 회화 외적인 자연과 현실의 거부

 

심리묘사 → 시각적 사실주의 거부 → 미술의 본질 추구

 

자연의 대상이 촉발하는 격정적인 심리 혹은 광기에 의한 형태를 이루는데 필요한 것은 ‘자연의 모방’을 위한 전통적인 기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흐는 현실을 정확하게 모방하려는 어떠한 의지 즉 사실주의에 대한 어떤 의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대상으로서의 현실을 그의 본능적 의도에 따라 과장시키거나 변형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 모습이 아니라, 그 순간 자신의 주관에 의해 파악된 심리 상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당시 서구에서 판매되던 일본의 목판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최초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만큼, 그의 예술적 의도를 표현하는데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서구의 전통 조형미학과는 전혀 다른 구성과 색채를 지닌 일본 판화였다. 그는 일본 판화의 단순화된 디자인, 양감 없는 채색부분, 경사진 원근법, 음영의 억제 등 서구의 조형성과는 다른 구성에 경도되었다.


이렇게 ‘자연의 모방’ 혹은 합리적 표현, 객관적 양태라는 이름하에 르네상스 이후 거역할 수 없는 회화의 언어로 전승되어온 원근법과 명암법, 해부학이 주관과 심리의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거부되면서, 고흐는 미술사의 한 획을 긋게 되며 예술의 고유한 본질을 추적하는 현대미술의 장을 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