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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미술과 이데올로기-나의 아틀리에

 

(2) 쿠르베 <나의 아틀리에(The artist's studio)>

1855년. 캔버스에 유화, 361 x 598 cm. 파리 오르세미술관.

(1) 그림의 의도

 

 

쿠르베의 예술적 성향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1855년의 <나의 아틀리에>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대단히 커다란 작품으로, 좌우의 폭이 598cm이고 높이가 361cm에 이르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중앙에는 쿠르베 자신이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그 풍경화는 눈으로 본 것을 그린다는 쿠르베의 예술적 이념과 관련이 있다. 또 그 오른쪽으로는 한 나체의 여인이 모델로 서 있다. 그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정체를 알지 못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 이 그림의 공간은 화가 자신의 아틀리에로, 쿠르베는 이 그림의 부제를 <7년간 나의 예술 시기를 결정하는 현실의 알레고리>라고 붙였다.


(2) 두 계층의 사람들 :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쿠르베의 좌우에 존재하는 인물들은 신분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그림의 우측은 부르주아 계층의 사람들이며, 좌측은 프롤레타리아들이다.


부르주아들 가운데 우측 제일 끝에서 책상 위에서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는 자가 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현대시의 아버지이자 예술비평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이다.


그의 앞에는 옷을 잘 차려입은 부르주아 부부가 있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이 그림을 사기 위해 이 아틀리에를 들른 사람들, 다시 말하면 쿠르베의 재정적 후원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창문 앞에서 무엇인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의 실루엣이 보이고, 그 앞에는 어떤 남자가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그가 바로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리얼리즘(레알리즘. Réalisme)이라는 말을 만든 샹플뢰리(Champfleury)로, 쿠르베가 성공할 수 있도록 그를 옹호하는 미술비평문을 써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 뒤쪽의 여러 인물이 보이는데요, 그 중 제일 왼쪽에 있는 인물이 예술 수집가 알프레드 뷔야르이다. 그 가운데 인물이 쿠르베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심어준 푸르동(Prudhon)이고, 그 옆으로는 위르벵 케뇨, 막스 뷔숑과 같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 사람들은 모두 쿠르베에게 사실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른쪽 인물들은 쿠르베에게 정신적․물질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르주아 계층의 사람들인 것이다.


(3) 쿠르베의 지향점


그러나 쿠르베가 자기 예술의 진정한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들이 아니다. 이들로부터 등을 돌린 모습이 예술가로서 자기가 지향해야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예술과 사상의 목표는 어둠 속에 가려있지만 바로 그의 앞에 보이는 프롤레타리아들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들을 앞에 놓고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지휘봉을 들고 지휘를 하는 것 같은 군주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 바로 프롤레타리아들을 인도하고 지휘해야 할 자신의 사명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4) 쿠르베의 진실


더구나 그림을 그리는 쿠르베 옆에 있는 누드 모델은 몸매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어깨와 엉덩이의 선이 너무도 급격하게 내려가고 있으며, 피부 빛도 이상적 누드의 색이 아니다. 더구나 젖가슴도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


이것이 바로 쿠르베의 사실주의적 화풍의 이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준 것이다. 바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그린다는 것이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다오. 그러면 천사를 그릴 것이다’라고 했던 쿠르베 아닌가?


과거의 전통적인 누드들은 모두 어떠했는가? 이른바 이상미, 순결함, 고결함을 드러낸다는 이름하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즉 가공되고 이상화된 가상의 여인상들이었다. 쿠르베는 그런 행위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리 아름다운 현실이 아니라, 자본가에 의해 짓눌리고 억압된 수많은 노동자들이 현실의 주림과 아픔에 신음하는 힘들고 추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어찌 이런 현실을 고상하고 아름답게 미화할 수 있었단 말인가? 쿠르베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 세계를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그리는 것이 자신의 예술적 사명이라는 것을 이 누드를 통해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쿠르베의 예술 세계를 진정 이해하고 아는 자가 누구일까? 전통에 길들어진 기성의 눈과 선입견을 가진 자는 이 진실한 세계를 보지 못한다. 이 세계를 알고 감지하는 자는 바로 그 앞에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맑고 깨끗한 눈과 마음의 어린 아이, 이 소년과 같은 사람뿐이다. 그리고 부르주아의 그룹의 옷을 잘 차려 입은 부부 앞에 엎드려 종이에 낙서를 하는 듯 한 어린 아이가 보인다. 쿠르베는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자기 예술의 순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교육되고 삶에 대한 이기심과 욕심을 가진 자들은 자기 예술 세계를 진정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앞에 놓인 강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세속의 욕망에 젖지 않고 그림 앞에서 희열을 느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돈을 들고 맹목적으로 그림을 사려는 그 부르주아 부부는 아마도 보들레르의 평가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이 위대한 비평가의 평가에 따라 그림을 사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들 앞에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보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림은 아는 자의 것이지 가진 자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5) 그림의 진정한 가치 : 프롤레타리아를 위하여


이 그림의 진정한 가치는 좌측에 그려진 수많은 인물군으로, 이른바 착취당한 사람들의 무리이다.


그림의 우측으로 약통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데 중국인 아편장사이다. 사회악의 이미지이다. 이들 무리에는 그뿐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 혁명의 가담자, 아일랜드 여인, 밀렵꾼 등 인생의 패배자 혹은 착취당한 자 혹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물군들 앞쪽에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아 있는 자가 있다. 바로 나폴레옹 3세의 알레고리이다. 가면을 쓴 폭군이다. 포악, 압제, 재정적으로 탐욕을 가지고 전쟁에서 패한 뒤 민중 봉기로 쫓겨난 나폴레옹 3세의 모습인 것이다. 그의 앞에는 외투와 검, 기타 등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낭만주의 작가들이 추구하던 어떤 유랑적인 아름다움 즉 사랑과 삶의 환희 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닥에 놓여있고 낭만주의를 이끈 군주 나폴레옹 3세가 추한 모습으로 이를 바라보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쿠르베는 스스로 낭만주의자들의 예술에 반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칼까지 놓여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혁명과 광기 어린 살인과 폭동, 학살 등 죽음을 암시하는 낭만주의적인 오브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그림 뒤쪽에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와 같은 형상이 있다. 이것은 마네킹이다. 당시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마네킹으로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 아래쪽으로는 좌대 위에 신문지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해골이 놓여 있다. 저 신문지는 비평문의 알레고리이며,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당시 비평가들의 허망한 글이다. 그리고 그 위에 해골이 놓여 있다는 것은 ‘비평가들에게 죽음을’ 이라는 메시지 아닐까? 당시 낭만주의를 옹호하고 사실주의의 경향에 대해 침묵 혹은 비판했던 비평가들에게 죽음을 선사하고자 하는 쿠르베의 강인한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6) 현실의 알레고리 : 인생 유전(人生流轉)


우리는 이 부분 때문에 이 그림을 현실의 알레고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바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인생유전이라고나 할까?


그림의 좌측 아래 한 여인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 이 여인이 바로 버림받은 아일랜드의 임신한 여인이다. 특히 다리를 보면 그 중독증으로 퉁퉁 부어있다. 이 여인을 모태로 해서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어린 아이가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쿠르베의 예술 세계를 보지만, 성장하면서 폭군이나 착취당한 사람들의 무리 속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죄를 짓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듯한 사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 해골을 중심으로 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당시 프롤레타리아 계층들의 허망한 삶의 양상을 우화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단순히 쿠르베가 지향하고자 했던 개인적이며 정치적 혹은 예술적 삶의 지향점뿐 아니라, 그가 계도하고자 한 사람들의 인생 유전까지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아틀리에 벽면의 초록 색조들로 나타나 있는 유령 같은 그림들이 있다. 이 그림은 농부, 목욕하는 여자들을 소재로 한 쿠르베 자신의 작품들이 흐리게 묘사된 것들이다. 이 그림들은 고급 예술에 반하는 경향들로써 당시 비평가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들이기도 하다. 나체의 여인 위쪽에 조그마한 원이 있는데 쿠르베가 조형적 실험을 했던 석고 원반이다.


이와 같이 쿠르베의 사실주의라는 예술은 삶 그 자체를 소재로 하여 꾸미거나 이상화하지 않고 상상이나 개인적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나름대로의 예술관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그의 인생관은 반(反)부르주아적이다. 따라서 쿠르베는 거지, 매춘부, 농부 등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에서 근대 생활의 여러 측면을 그림을 통해 암시하고자 했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파리콤뮌에 참여했던 그의 태도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