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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마네-올랭피아

 마네의 <올랭피아(Olympia)>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와 같은 해에 그려져 또 하나의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올랭피아>로, 이 작품 역시 당대 화단에 대단한 파문을 일으킨 그림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예외적으로 1865년 살롱전에 입선하였다.


이 작품의 주제 즉 주인공은 매춘부이다. 1860년대 매춘부들이 사회의 저변에서 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 나타난 여인은 전통적으로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비너스가 아니다. 그림 속 여인은 거리의 여인으로 보이며, 이런 사실이 당시의 부르주아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게 된다. 바로 자신들의 부끄러운 밤문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림 제시 : 마네의 <올랭피아>


이 작품이 1865년 살롱전에 입선하여 전시되자 이 그림의 추잡하고 선정적인 주제와 묘사에 평론가와 시민들의 협박이 빗발치게 된다. 전시실에 들른 아이들의 교육에 좋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이 그림은 할 수 없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높은 천장 바로 아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걸리게 된다.


A. 올랭피아 제목의 유래


1865년 이 작품이 전시된 살롱의 전시도록에는 시인 아스트뤼크(Astruc)의 다음 시가 인용되어 있다.

 

꿈꾸는데 싫증나면 올랭피아는 잠을 깨고

봄은 얌전한 흑인 메신저의 팔에 들려오네.

낮에 볼 수 있는 감미로운 꽃을 피우려고

사랑의 밤같이 하녀가 찾아온다네.

젊고 예쁜 처녀의 가슴이 불에 탄다네

 

마네의 <올랭피아>는 이 시에서 유래하지만, 이 이름은 당시 파리 홍등가 여인들에게 가장 흔한 가명 중 하나였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패러디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 그림 제시 :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그런데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여인은 상류층의 귀족여인인데 반해 <올랭피아>에서는 그 여인이 저속한 매춘부로 대치되었다.

또한 그 상류층여인의 장미는 매춘부의 머리의 난초로, 비너스에 나타난 충실한 개는 성적 방종을 의미하는 고양이로 바뀌었으며, 의복을 꺼내는 하인은 고객이 보낸 꽃을 들고 오는 흑인 하녀로 대신 나타나있다. 즉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지순한 아름다운 누드라는 전통적 여인상을 보여준다면, <올랭피아>는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파렴치한 처녀의 이미지로 당대의 향락적 사회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당대 비평가들이 지적한 대로 이 여인은 고상하고 순수한 인간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알몸을 드러낸 채 더러운 손을 펼쳐 국부를 눌러 가리고 있는 부끄럼을 모르는 파렴치한 존재, 저속하고 추한 여인으로 비추어져 있다.


그녀의 얼굴은 겉늙었고 때 묻은 발에는 경망스럽게 슬리퍼가 걸쳐져 있다.


손목에는 놋쇠로 된 팔찌가, 목에는 검은 천으로 된 리본 목걸이가 걸려 그 천박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몸도 금빛 혹은 우윳빛으로 깔끔하게 묘사된 것이 아니라 침대보와 시트처럼 군데군데 추한 자국이 남아있어, 당시 평론가들의 거센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이 여인의 모습이 더욱 추하게 보이는 것은 인체의 모델링이 섬세하지 못하고 그 윤곽선도 거칠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B. 작품에 나타난 매춘의 모습


이 작품은 당시 사회에 음성적으로 만연해 있던 부르주아들의 매춘행각을 암시하고 있다. 즉 당시에 부르주아의 번지르르하고 근엄한 삶 이면에서 돈과 결부되어 횡행하던 항략의 행태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의 추한 이면 즉 감추어져야 할 문제가 사회의 전면에 부각된다는 것은 당시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는 충격과 혼란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매춘은 인간의 도덕적 죄악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돈을 위해 신성한 육체를 파멸시키는 행위는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회악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그림 속의 주인공이 결코 아름답다거나 성숙한 자태를 보이는 여인이라기보다는 아직 어린 소녀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은 너무 이른 나이에 사회를 알아서인지 아니면 그런 사회악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어려서인지, 또는 성(性)을 돈벌이라는 경제적 가치로 보기 때문인지 부끄러운 기색하나 없이 아주 편안하고 당당한 자세로 관객을 초대하는 듯 보인다.


이처럼 이 그림이 부르주아나 중산층의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운 행위 그러나 공공연히 성행하던 그들의 뒷골목 문화를 단적으로 폭로한데 대해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며, 그 놀라움에 이 그림을 혹평하고 나섰던 것이다.


C. <고양이와 함께 한 비너스>에서 <올랭피아>로


이 그림의 원제목은 <고양이와 함께 한 비너스>이었지만, 시인 아스트뤼크가 그 제목을 <올랭피아>로 바꿀 것은 제안했던 것이다. 한편 올랭피아라는 이름은 15년 이상 파리인의 심금을 울린 뒤마피스(Duma fils)의 <춘희>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연적으로, 파렴치한 여인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 부덕하고 추한 여인의 이름이 당시 사람들에게 너무나 부당하게 보인 마네의 기법과 만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지독한 논란거리로 밖에는 작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사회의 비도덕적 관념을 감추려는 일반적인 혹은 아카데미즘에 물든 화가와 비평가의 냉혹한 시선을 피할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비난과 혹평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와 함께 현대 미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D. 미술사의 아이러니


이 작품은 1889년 미국의 한 경매에서 미국인에게 팔릴 것을 예상한 인상주의의 대가이자 마네의 친구인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총력전을 펼쳐 1만 9천 4백 15프랑에 사들이게 된다. 그리고 모네는 단 한  푼의 이익금도 남기지 않은 채 이 그림을 국가에 예속시킴으로써 오늘날 프랑스의 소유가 되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는 1934년에 소장자가 국가에 기증하여 지금 오르세 미술관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당대에 가혹한 비난과 혹평의 대상이 되었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가 오늘날에 현대 미술의 진정한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미술사에서 커다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