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네의 작품 분석
(1)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Le Dejeuner sur l'herbe)>
마네의 전위적 예술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작품이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이다. 이 작품은 <올랭피아(Olympia)>라는 작품과 더불어 당시 사회에 만연한 경박한 부르주아들의 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그림이다.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
마네의 <올랭피아>
마네는 이 작품을 1863년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낙선했다. 당시 관전(官展)의 심사위원들은 전통적 화법인 아카데미즘(academism)에 물든 사람들로서 그들의 눈은 다분히 편파적이며 시대의 정신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여론은 그 심사위원들의 태도가 너무도 엄격하여 부당하다고 원성이 높았다. 이런 여론에 나폴레옹 3세는 관전에서 낙선한 작품들을 따로 모아 전시할 것을 명령한다. 이 전시 이름을 ‘낙선 전시회(Salon des Refusés)’라고 불렀다. 마네는 이 그림을 <목욕>이라는 제목으로 낙선 전시회에 다시 출품하였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본 한 관객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천한 여인이 정장 차림을 한 두 남자 사이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벗을 대로 벗고 건방지게 앉아 있다. 사내 녀석들은 공휴일에 성인 행세를 하는 학생들 같다. 나는 이 수수께끼 같은 어울리지 않는 의미를 찾으려고 헛되이 애썼다. 이것은 한 젊은 화가의 짓궂은 장난이며 전시할 가치조차 없는 부끄러운 상처다. 풍경은 잘 그렸으나 인물은 제멋 대로다’(최승규, 『서양미술사 100장면』, 서울, 가람기획, 1996, p. 274.)라고 혹평을 가하게 된다.
이 관객이 이야기 한 대로 이 작품은 정장을 한 두 남자 사이에 한 여인이 나체로 앉아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의 주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당시의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던 삶의 한 단면을 묘사한 것 같다. 어느 공휴일의 피크닉이라고 할까? 그러나 피크닉이라고 하기에는 이 세 사람의 관계가 너무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더구나 가운데 앉아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부끄러운 줄 모르는 여인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후경에 몸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여인의 존재는 누구이며, 숲의 한 구석에 널려진 어지러운 정물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처럼 이 화면을 장식하는 모든 부분적 요소들은 일정한 통일감을 갖고 있지 않다. 더구나 모든 사물들과 인물들을 묘사한 붓터치는 전통적인 엄격한 데생과 구도, 명암법과 원근법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
A. 그림 자세히 읽기
이 그림에 나타나는 인물 가운데 주인공으로 보이는 나체 여인이 마네가 모델로 즐겨 그렸던 빅토린느 뫼랑(Victorine Meurent)이다. 이 여인은 빨강에 가까운 아름다운 금발이었고, 파리지엔 특유의 날씬하고 세련된 몸맵시가 돋보였으며, 특히 아름답고 유연한 가슴의 선은 그녀의 자랑이었다.
지금 이 장면의 광경이 연출되는 시간은 백주 대낮이다. 이 시간, 한 여인이 남자들과 공원에 놀러 와서 옷을 훌렁 벗고 파렴치한 모습으로 앉아 관객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부끄러움이란 조금도 모르는 저속함 그 자체 아닌가? 신체의 모습도 숭고함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누드의 양상 즉 서있거나 누워있는 포즈가 아닌 앉아있는 모습이다. 앉아 있는 누드는 지극히 성적이며 선정적인 매력을 보일 뿐이다.
그녀를 묘사한 실루엣 역시 관례에서 벗어난 것이다. 비너스나 천사를 그리는 세심하고 고상하며 이상적인 붓터치가 전혀 아니다. 짧은 목에 둥근 등의 곡선, 접혀진 아랫배와 굵은 허벅지 그리고 크고 못난 발이 관객들의 눈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형상이었다.
☞ 그림 제시 : 09.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부분
이 여인이 마주 앉은 사내의 가랑이에 다리와 발을 뻗고 있다. 그녀의 옆으로는 과일 바구니가 쓰러져 사과, 체리, 빵, 물병, 흰 냅킨, 여인들이 벗어놓은 원피스와 옷가지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다. 이 정물을 그린 강하고 거친 붓놀림이 눈에 들어온다.
☞ 그림 제시 : 10.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정물 부분
이 여인 뒤쪽으로 모자를 벗고 정장 입은 사내가 있다. 그는 화가 마네의 동생 귀스타브 마네(Gustave Manet)로, 당시 파리시의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후에 교도소 소장을 지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 그림 제시 : 07.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
그리고 화면의 오른쪽에 모자를 쓴 인물이 있다. 그가 쓰고 있는 모자는 당시 파리 대학의 학생모자이다. 바로 학생 녀석들이 마치 직업여성들과 대낮에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으로 당시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 사회가 지닌 가식적이며 이중적인 도덕성을 고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인물의 모델은 마네의 친구이자 조각가인 페르디낭 렌호프(Ferdinant Leenhoff)라는 사람으로, 훗날 마네의 매제가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 그림 제시 : 07.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
그리고 멀리 속옷을 입은 여자가 몸을 물에 반쯤 담그고 구부리고 있다. 이 자태는 여인에게 공개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포즈가 아니었다. 이 여인의 모습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았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이 원경의 여인은 원근법적으로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고 그림 속의 벽화 배경처럼 표현되어 있다. 바로 이 여인의 모습 때문에 당시의 많은 비평가들이 마네는 원근법을 알지 못한다고 비난을 퍼부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그림 제시 : 07.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
B. 마네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
이 작품이 1863년 5월 15일 ‘낙선 전시회’가 오픈될 때 마네는 대중들의 평가에 큰 기대를 걸었다. 마네는 살롱전이라는 관전의 심사위원들과는 달리 대중들의 평가가 진정한 평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평가는 마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즉, 그는 관념과 상상의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살아있는 일상적 현실이야말로 회화의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주제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그림은 관전에서 낙선한 그림이라는 배척되고 추방당한 자들의 그림이라는 의식이 대중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네는 그런 태도의 대중들이 마치 패배자를 덮친 승냥이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낙선전에 전시된 이 그림은 당시 소란스런 야유와 비난의 대상이 되며, 회화 역사상 전대미문의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C. 작품의 테마
이 작품은 마네가 감지한 현실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당시 부르주아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했던 예술의 테마는 고상함과 지고한 미를 전제로 한 것으로, 주로 비너스나 님프 등 신화적 신격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테마는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마네의 이 작품이 낙선한 살롱전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비너스의 탄생(La Naissance de Vénus)>(1863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즉 신고전주의 기법으로 신화를 재현한 이 작품이었다는 것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 당시 부르주아 기대에 부응한 작품 -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비너스의 탄생>
1863년 살롱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1863년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식사>가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살롱에서 배제된 반면, 이 작품은 그 해 살롱에서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작품에 매료된 나폴레옹 3세는 이 그림을 정부가 구입, 소장하도록 하였다.
물결이 잔잔히 이는 바닷가에서 이제 막 탄생한 비너스가 손을 위로 올려 여체의 곡선미를 강조하고 있다. 뽀얗고 매끈한 여체는 로코코풍으로 이상화되었다. 옆으로 누운 자세와 여체가 드러내는 유연한 곡선에서 앵그르의 영향을 감지 할 수 있다. 여성의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작품은 제 2 제정시대에 유행하였던 전형적인 여성 누드화이다.
한편 나폴레옹 3세를 비롯하여 많은 동시대인들이 카바넬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작가 에밀 졸라는 이 비너스를 분홍빛과 하얀색의 과자로 빚어진 맛좋은 고급 매춘부라고 비난하였다. 근대 미술의 태동기에 화가들의 새로운 움직임을 격려하였던 에밀 졸라에게, 이러한 비현실적인 우미함은 어떤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실제 마네가 자기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그런 숭고함과 절대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허황한 정신세계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인물과 사물 즉 우리의 실제 삶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관념과 상상의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현실이야말로 회화의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주제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D. 작품의 거친 기법
이 그림은 상당히 거친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세밀함과 정교함을 표현하는 관례적 기법을 무시한 것이다.
푸른색조의 숲은 생동감있고 사실적이기보다는 빛에 바래 밋밋한 색조의 벽감처럼 표현되었다. 특히 나무나 풀의 모습이 거친 붓 자국으로 칠갑되어 완성되지 않은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 위의 인물은 앉아 있다기보다는 마치 벽에 새겨져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의 스케치와 같은 빠른 붓놀림의 거친 기법이 밋밋한 색조와 무시된 원근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 미완성적인 거친 기법은 비합리적 해부학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즉 여인의 발과 무릎, 가슴과 팔꿈치, 엉덩이와 손, 얼굴을 강조하고 있는 음영은 해부학에 전혀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어찌 보면 실제 살아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그렸다기보다는 어느 그림을 보고 그린 일종의 모작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또한 그림 하단의 정물의 모든 오브제들 역시 꼼꼼하고 세밀한 것이 아니라 아주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벽감과 같은 밋밋한 색조, 해부학의 부재, 그림의 각 요소에서 나타나는 거친 터치의 기법은 그림의 파격적이며 충격적인 주제를 더 한층 과장시키고 있다. 즉 주제의 과장됨이 일종의 기법의 과장됨과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과장된 주제와 기법이 당시 현대인들의 기호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당시의 현대인들이란 이미 지적한대로 신고전주의의 기법과 화풍에 익숙한 부르주아들이며 대중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옷의 단추 하나까지 꼼꼼하게 공들여 표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 그림은 일종의 스케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마네 화풍을 ‘스케치 기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스케치 기법이란 미완성의 작품을 뜻하는 것으로 다분히 신고전주의적인 시각에 의거한 평가라고 볼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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