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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 무(無)주제의 주제


마네는 사실주의자인 동시에 인상주의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화가이다. 그는 쿠르베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본 것만을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마네는 눈으로 본 세계를 재현한다는 사실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물감 혼합법과 세련된 완성미를 포기하고, 그 대신 과감한 색조를 통해 햇볕이 만들어내는 생생하며 거친 세계의 사실성을 탐구하였다.


이 세계는 종래의 예술이 추구한 인위적이며 가식적 사실과는 달리 생동감있는 진짜 사실이라는 점에서 ‘진실’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기법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를 일명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마네의 그림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마네의 그림 속에는 전통적인 시각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그림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회화는 그 내용이 제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네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내용은 제목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마네의 그림에서는 제목에서 기대할 수 있는 ‘문학적’ 주제를 발견할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음악>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 그림 속에서 연주자나 음악은 듣는 사람들의 흥에 젖은 감흥을 기대한다.


☞ 그림 제시 : 01.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또는 <소풍>이라고 제목이 붙여진 그림에서는 여흥의 즐거움을 보길 바란다. 이처럼 그림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주제를 ‘문학적 주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를 ‘회화의 양식을 빌어 표현한 문학적 주제’라고 흔히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마네의 그림에서 그와 같은 제목과 일치하는 주제 즉 문학적 주제를 발견할 수 없다. 그저 일상생활의 단편적 현실, 즉 스냅 사진과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며 예술적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이색적인’ 주제만이 그의 작품에 나타날 뿐이다.


전통적 화풍은 주로 역사화가 주를 이루었다. 역사화는 역사의 위대한 사건, 위대한 영웅들의 위업을 다루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한 종류의 그림은 회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기보다는 역사 속에 나타난 도덕의 가치나 역사적 인물의 위상 등 교훈과 연관된 문학적 주제가 주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마네의 그림을 통해 어떠한 역사적이거나 영웅적인 위상도, 또 어떠한 숭고하거나 고결한 인간 행위도 발견하지 못한다. 즉 그의 작품은 무(無)주제의 주제, 즉 의미나 체계가 뚜렷하지 않은 일상성이라는 지극히 새로운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네가 추구한 예술 세계로, 회화의 운명을 일신(一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마네의 예술 기법은 전통적 기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우선 그는 화폭을 단조로운 색상을 비롯해 거친 붓자국과 명백한 자연광 등 이른바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요소로 가득 채우게 된다.

 

☞ 그림 제시 : 02.마네의 <해변에서>


이런 생동감 있는 표현이 미술사에서 인상주의 회화의 특징이다. 이러한 마네의 기법은 결국 그 이전의 신고전주의적인 엄격한 해부학과 정밀한 데생 중심의 완성미를 거부하는 태도인 것이다.

 

 그림 제시 : 03. 앵그르의 <샘>

 

 

               04.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그리고 당시 일본 판화가 프랑스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일본 판화의 평면적인 특성이 당시 젊은 예술가들에게 또한 강한 영향을 주게 된다.

 

☞ 그림 제시 : 05. 우끼요에 / 06. 우끼요에


이러한 일본 판화를 대하면서 마네는 서구의 전통회화가 지닌 원근법과 명암법을 중심으로 한 입체감 즉 3차원의 회화적 표현이라는 허상이 과연 회화의 필수적 요소인가를 반성하게 된다. 바로 이렇게 전통적인 기법, 다시 말해 명확한 해부학과 엄격한 완성미, 그리고 2차원적인 평면에 3차원적 허상을 담아내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원근법과 명암법을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르네상스 이후의 전통적인 ‘진실임직함(la Vraisemblance : 르네상스 미학을 일컫는 말로 자연의 모방과 같은 말임)’과 ‘눈속임(le trompe-l'oeil : 회화는 본질적으로 펴평면 예술인데 명암법과 원근법을 사용하여 공간적 깊이감을 표현한 것이 일종의 눈속임 기법으로 르네상스 미학을 지칭하는 용어임)’ 미학을 부정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이 주제가 엄정하고 무엇인가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문학적 주제에서 벗어나 일상적 삶의 단편이 예술의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과 새로운 회화적 기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마네 회화의 특징이며 그의 현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