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낭만주의? - 시각 현실을 거부한 앵그르(Ingres)
* ‘고전적’과 ‘낭만적’?
실상 ‘고전적’이라는 말과 ‘낭만주의’라는 말은 함께 서로 상반된 용어이기에 함께 사용하기가 거북하다. 고전적이라는 말은 이상적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조화와 통일감, 균형과 균제의 미 등 그림의 이성적 속성을 강조하는 경향이며, 낭만주의라는 말은 그와 달리 삶과 죽음에 연관된 희로애락 등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경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라는 화가를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가 서구 회화의 경향을 이성에서 감정의 표현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그림은 해부학과 비례법 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상을 왜곡시키면서 인간의 감성에 직접 호소하게 된 것이다. 이런 화풍은 메시지 전달을 목표로 한 산문적 경향에서 탈피하여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화가의 의도를 즉각 간파하고 공감하는 시적 회화의 경향을 창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이 예술적 아름다움?’ : <그랑드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1814년, 캔버스 위에 유화, 91×162cm, 루브르 미술관)
앵그르의 걸작 중 하나가 <그랑드 오달리스크(Grande Odalisque)>이다. 이국풍의 나부가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를 하고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그림으로, 유연한 곡선과 아름다운 피부가 압권이다.
오달리스크란 터키 황제의 신변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노예를 가리키는 말로, 그랑드 오달리스크란 곧 <큰 노예>이다. 이 작품은 앵그르가 이탈리아에 체류할 때 나폴리 왕국의 카로리네 여왕의 주문에 의해서 완성한 작품으로, 당시 근동 지방에 뻗친 프랑스의 세력과 함께 세인들의 관심을 끈 터키의 풍물에 대한 관심과 취미가 반영되어 있다.
특히 여체를 비롯해 커튼과 침상의 도구들을 표현한 정밀한 붓터치와 그림 속 오브제들의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감, 그리고 전면으로 비춘 엷은 광선과 함께 빛나는 우아한 여체의 미가 고전주의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인의 머리에서 허리를 거쳐 발끝으로 연결되는 S자 즉 콘트라포스토의 곡선은 고전미의 대표적인 곡선으로, 이 여인을 더욱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앵그르는 고전주의 화가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파리의 1819년 살롱에 출품되었을 때, 엄격한 해부학에 눈이 길들여진 고전적 화풍의 평론가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 그림이 비난을 받은 이유는 그림 속 여인의 신체가 여러 모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여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난히 긴 허리가 눈에 띤다. 해부학에 의거하면 이 여인은 정상적인 사람보다 척추가 몇 마디는 더 있어 보인다. 허리와 히프 그리고 허벅지의 경계도 불확실하며, 오른쪽 다리 위에 오른 왼쪽 다리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발 또한 오른발과 왼발의 위치가 바뀐 것 같다. 그리고 그 길게 휘어진 허리선과 맞물린 팔 또한 대단히 길게 보이며, 몸통과 왼쪽 팔의 관계 또한 어색하다. 평론가들은 앵그르의 스승인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1)가 지적한 대로 예술적 재능은 있을지 모르지만 소묘력이 부족한 앵그르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앵그르는 이런 엄격한 해부학과 해부학에 의거한 소묘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회화는 해부학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이 바로 회화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회화가 더 이상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해부학 즉 엄정하고 정밀한 과학으로서가 아니라 순수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순수 예술적 아름다움이란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감각과 의지에 따라 가공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곧 예술의 아름다움이 조형 즉 선과 색에 있음을 주시한 것이다. 달리 말해 앵그르는 화가란 현상의 합리적 재현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그 조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해부학을 고의로 왜곡시켜가면서 허리와 팔의 긴 선을 통해 유려한 여인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며, 팽팽한 양감은 고운 여인의 피부 감촉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여인은 해부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형상이며, 예술적으로 밖에는 존재할 수 없는 형상인 것이다. 바로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형상이 진정 예술적 아름다움이라는 앵그르의 말이 실감나는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예술가의 보고 느끼는 자율 의지에 따라 형상을 창조할 수 있음은 예술 창작의 관례를 거부하는 것으로, 도덕적 교훈과 메시지를 위해 완전하고 지고한 미를 창출했던 과거의 예술 즉 고전주의와는 다른 예술의 시대 즉 낭만주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 새로운 화풍을 촉발시킨 주역이 바로 앵그르라는 점에서 그를 고전적 낭만주의로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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