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뢰즈의 <시집가는 새색시>(1761년, 캔버스에 유화, 91.4 x 118.1cm, 루브르 박물관)
샤르댕과 더불어 계몽주의의 중요한 화가가 글뢰즈로 그의 출세작이 <시집가는 새색시>이다. 이 그림의 소재는 당시 서민 가족의 혼인이다. 그림의 가운데 두 남녀가 결혼을 하는 주인공이고, 좌우에 색시의 부모가 있다. 그리고 그림의 제일 우측에는 시청에서 나온 직원이 앉아있고, 전체 공간 주위에는 8명의 자녀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공간 모습이 굉장히 무질서하다는 것이다. 장롱이 그렇고 벽에 달린 선반이 그렇다. 벽면은 더럽고 헤져있으며 계단의 난간은 부셔져서 나무로 대충 보수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날, 아버지는 잘 차려입은 모습이지만, 어머니는 평상의 노동하던 복장 그대로이다. 이들 부모의 얼굴에 진 깊은 골주름은 추하고 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들을 키우느라 평생을 바친 영광스런 흔적 아닌가? 그 아버지가 사위에게 지참금을 건넨 뒤 무엇인가 한마디 하고 있다. 아마도 딸과 사위에게 행복한 삶을 영위하라는 당부, 결코 미사여구가 동원된 아름답고 위엄에 넘친 한 마디가 아니라 투박하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진솔한 당부일 것이다. 이 평범한 아버지가 이 순간만큼은 위대한 영웅처럼 보인다. 정치적인 영웅, 전쟁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통해 진실함을 드러내는 우리들의 영웅 말이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이다.
반면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매일의 노동에 젊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상실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당당하지도 못하고, 의젓한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는 유식한 사람이 아닌 듯하다. 그저 딸에 대한 사랑과 애정에 가득한 모성,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지극한 아쉬움에 마음이 저려 말 한마디 못하는 어미이다. 그 어미가 딸의 팔을 잡고 아쉬움과 미련을 달래며 눈빛과 표정으로 하고픈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진솔한 감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마도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 이런 진실한 삶의 모습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전체적인 가족의 상황을 알 수 있다. 모두 8명의 자녀인데, 그 가운데 시집가는 여인이 첫째이고 그 여인에게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아이가 셋째 동생이다. 둘째는 아버지 바로 뒤편에 기대있다. 흔히 세 자매가 있는 가정을 보면 첫째와 둘째의 사이가 썩 좋지 않고, 둘째와 셋째 사이의 관계 역시 그렇다. 그리고 둘째에게 구박을 받는 셋째를 보살피는 사람이 첫째인 것이다.
이 그림에 이런 세 자매의 미묘한 감정관계가 나타나 있다. 즉 장롱 앞의 둘째가 셋째를 아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큰 언니가 시집을 가니 넌 이제 각오해라’라는 눈짓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눈빛과 표정이 무서워 셋째가 떠나야할 언니에게 고개를 파묻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매들의 관계가 정말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질투나 시기는 실상 진정한 식구라는 연대감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
그리고 나머지 동생들은 너무 어려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있는 표정들이다. 심지어는 어린 동생이 이 순간 닭장을 가지고 들어올 것이 무엇인가? 허나 여기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 듯하다. 그 동생이 닭장 문을 열자 어미닭과 병아리들이 쏟아져 나와 주는 모이를 먹고 있다. 그리고 한 병아리가 쏜살같이 달려와 뒤늦게 어미에게 합류한다. 이것이 바로 가족 공동체이다. 그러나 그 우측으로는 바닥에 놓인 그릇 위에 올라간 한 마리의 병아리가 있다. 아마도 가족의 품을 떠나야 하는 큰 딸의 외롭고 두려운 마음을 비유한 것일 것이다. 이처럼 이 그림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결혼을 주제로 부모의 애틋한 인정과 함께 가족 사이에 교묘히 흐르는 미묘한 감정관계가 표현되어 있다.
계몽주의 예술가들의 주된 소재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귀족들의 위선에 찬 허영보다는 평범하지만 진솔한 인간 삶과 그 속에서 보이는 인간의 진실 말이다. 그들은 이러한 화풍을 통해 진정한 휴머니즘 혹은 인간미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잔잔한 일상, 너무도 평범하기에 그 일상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망각한 우리에게 그 평범함과 진부함이 우리가 우리를 담아야 할 값진 그릇이라는 것을 이런 그림을 통해 잠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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