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이래 화가들의 화폭에 표현한 내용은 인간의 이성적 사유였다. 이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행해진 조형 활동을 고전주의라 한다. 이런 조형적 태도와는 달리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즉 살인이나 광기, 학살, 사랑 등의 감정을 이성에 의한 통제나 여과 없이 그대로 화폭에 전달한 예술가들이 있다. 이른바 낭만주의 예술가들이다.
* 그림은 문학인가?
19세기에 들면서 서구에서는 회화가 과연 이성과 합리적 사유의 체계를 통해 고결한 인간 행위 또는 선(善)과 도덕이라는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이 인다.
이런 고전적 이상을 위해 예술가들은 눈앞의 현실을 보다 고상하고 웅장하며 유려하게 표현해야 했는데, 과연 이런 이상이 인간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가? 관찰과 해부학을 통해 눈으로 본 현실을 세밀한 방식으로 더욱 이상화시켜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그림의 내용 즉 메시지 전달에 주안점을 둔 것은 아닌가? 이처럼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그림 속에 이야기의 구조를 도입한다는 것은 그림 속에 많은 상징적 요소를 넣고, 관찰자는 이를 발견하고 해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발견과 해독이라는 것은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지적 행위를 우선으로 한 그림의 ‘산문적’ 성격을 앞세운 것이다. 즉 그림을 꼼꼼히 읽고, 그 읽은 결과를 이로정연하게 매듭지어 그림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 회화의 본질적 언어
그림은 형(形)과 색(色)을 기본 언어로 해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형태 즉 그림의 데생은 인간의 이성 활동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즉 형태의 옳고 그름은 우리의 이성에 의해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 잘못 그어진 직선, 비뚤어진 원의 형태는 우리가 금방 식별해내고는 그 잘못됨을 지적하지 않는가?
그림의 또 다른 중요한 언어가 색이다. 그런데 이 색의 세계는 오묘하여 인간의 이성에 의해 명쾌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색이 다르며, 좋아하고 싫어하는 색이라도 기분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즉 색은 인간의 감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은 이성과 감성이 혼합물인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 이상이라는 목표 앞에서 그림의 감성적 요인이 무시된 것은 아닌가?
그림이 숭고한 사유와 고결한 행위를 표현해야 한다는 구속 없이 예술가가 자유롭게 상상한 것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예술, 해부학과 기하학의 제약 즉 이성의 검열 없이 예술적으로 밖에는 표현될 수 없는 형상을 창조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한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인간의 격정적인 감정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예술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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