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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미술과 에로티시즘 3

 ▶ 프라고나르의 <그네>(1766년. 캔버스 위에 유채, 81 x 64 cm. 런던 월러스 컬렉션)


바토의 형식미에 따르면서 로코코의 일가를 이룬 사람이 프라고나르로, 그의 <그네>라는 작품을 살펴보자. <그네>는 한눈에 보아도 아름답고 고운 색조가 매우 자극적이며, 그 형상이 세련되고 리드미컬한 것이 로코코 미술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당시의 귀족들이 얼마나 감각적인 사랑의 풍류를 즐겼는가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그림 제시 : 프라고나르_그네

 

이 그림에서 우선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중앙의 아름다운 여인이다. 가슴이 훤히 패이고 사치스런 꽃과 레이스가 달린 무척 아름답고 세련된 의상과 그에 어울린 꽃무늬의 큰 차양을 가진 모자가 돋보이는 것이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복식이다. 특히 아름답게 가꾼 이 여인의 몸매에서 감성적인 육체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진한 분홍색으로 이루어진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색깔이 무척 선정적이다. 그것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에 반사되면서 금빛과 뒤엉킨다. 이 귀족적 자태의 여인이 앉아있는 그네의 의자 역시 금빛 수가 정교하게 놓인 세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이 여인은 처녀가 아니라 결혼한 유부녀이다. 이 여인의 남편은 당시 70세의 나이에 접어든 필립 공작이다. 이 아름다운 여인이 왜 나이 든 귀족과 결혼을 했을까? 바로 당시 유쾌한 사회활동을 위한 공작부인의 칭호와 그 유산이라는 세속의 명예와 부 때문이었던 것이다. 당시 대부분 귀족이나 그 부인들이 애인과의 은밀한 밀회를 즐기는 것이 상례였던 만큼, 그 유희적 삶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귀족으로서의 칭호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이 여인은 어느 날 남편에게 뒤뜰에 나가 그네를 태워달라고 조른다. 물론 이 여인은 애인 줄리앵에게 이 시간 그 장소에서 만날 것을 이미 편지로 요구한 터였다. 아름답고 젊은 아내가 교태를 부리며 그네를 태워달라는 요구를 저버릴 남편이 누가 있겠는가? 늙은 남편은 젊디젊은 부인을 대동하고 뒤뜰에 나가 그네를 밀고 당기며 너무 즐거운 한 때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그 부인의 젊은 애인은 이 저택의 정원에서 은밀한 밀회를 즐기기 위해 체통도 무시한 채 담을 넘어 왔더니, 전혀 예상 밖으로 애인이 남편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머지 몸을 숙여 나무 밑으로 숨는다. 들켰다가는 그 망신과 봉변을 어이 감당할 것인가?


그녀는 그네에 올라 앞쪽 숲에 숨은 애인의 애타는 모습과 뒤에서 자신을 밀며 주책없을 정도로 즐거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의 유희이며 모험인가. 남편과 애인을 왔다 갔다 하는 그네는 마치 사랑의 삼각관계이자, 지조 없는 사랑의 변덕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랑의 모험을 즐기는 이 여인은 그 유희의 웃음을 허공에 뿌리고, 그 유희에 들뜬 웃음이 창공의 화려한 빛과 만나고 있다.


이 대저택에는 견디어온 역사의 세월을 알 수 있는 커다란 나무와 고대의 조각상이 있다. 마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고전적 전통 즉 이성과 도덕의 준엄한 가치로 보이는데, 이 여인은 이런 고대의 전통과 규범을 조롱하는 듯 그 나무에 그네를 걸고 경박한 유희적 쾌감의 웃음소리를 내고 있다. 그림 배경의 침묵과 어둠이 이런 여인의 감성 앞에서 무기력한 이성과 도덕, 빛바래고 녹슨 이성의 무력함을 드리우고 있다.


이 순간 애인과의 즐거운 한 때를 기대하며 월담을 한 청년 줄리앵은 손을 들어서 애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둘만의 시간을 갖긴 틀렸으니 눈요기나 하자는 듯, 애인의 치마속이나 보자는 심보이다. 여인은 이런 애인의 마음을 아는 듯 다리를 번쩍 치켜들게 되고, 그 뻗치는 다리의 힘을 이기지 못한 샌들이 허공을 향해 날고 있다.


우리는 이런 그림에서 예술적 아름다움 즉 시각적으로 현란한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 화려한 색채감 등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선정적이고 농기에 가득 찬 그림, 동시에 경쾌하고 에로틱한 매력을 보이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리의 정신을 감화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화풍의 그림은 우리에게 인간의 숭고한 사유와 도덕적 행위를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당대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 퇴폐적이며 경박한 풍류라는 귀족 문화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이런 문화가 에로티시즘과 연관을 맺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결국 이런 가증스런 귀족 문화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단죄를 받게 된다.


다만 어둠 속에 가려진 거목과 고대의 석상이 어두운 침묵 속에서 인간의 숭고한 사유와 고결한 행위의 심층을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