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 젤로 - 피에타
완전한 예수의 육체 : 천상의 이미지
암시적인 빛 속에 놓인 예수의 몸을 보라. 오랜 시간 시련을 겪은 추하고 상처투성이의 죽은 시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완벽하다. 또한 예수의 머리와 몸통, 다리와 발이 이루는 선은 물결모양 즉 S자 곡선이다. 바로 이 곡선이 인간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이다.
따라서 이 예수의 죽음은 조형적으로 삶이요 생명이다. 이승에서의 목숨은 끊겼지만, 새로운 정신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지상에서보다도 더욱 완벽하고 영원한 삶 즉 천상의 삶이 열린 것이다.
이 반원의 나머지는 인간 각자의 몫이다. 이승에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기도가 나머지 반을 채울 것이며, 그럴 때 새로운 삶은 예수의 육신처럼 따스하고 완전하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을 미켈란젤로가 은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하늘에서의 아들이 영위할 새 삶을 알기에 마리아의 슬픔이 매우 억제된 것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인간적 오열보다는 깊은 명상과 기도로 나타나있다.
이 작품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이 두 사람의 인체가 보이는 상대적 젊음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가 33세.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예수는 이제 막 수염이 나기 시작한 청년의 모습이다. 또한 마리아의 모습 역시 30대 나이의 아들을 둔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20대 중반의 처녀 모습이다.
실제 이 작품이 대중에게 공개되던 날, 지나가던 사람이 예수와 마리아가 모녀간이 아니라 오누이간이라고 힐난을 했다고 한다. 이에 격분한 미켈란젤로가 여느 여인도 하느님을 경배하며 순수하고 정결하게 살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거늘 하물며 마리아야 얼마나 젊게 보였겠는가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논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재능과 기교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 속에 작가가 새겨놓은 은밀한 상징성이다. 이 상징성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느님 말씀처럼 믿음을 통해 ‘느껴야 하는’ 것이다.
바로 느껴야 하는 하느님의 세계, 예수의 죽음, 마리아의 기도를 미켈란젤로는 세련된 기교의 이면에 이입시킴으로써 신성한 종교의 의미와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시적이며 보여주는 삶이 아닌 은밀한 기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마리아의 가슴에 두른 띠에 <조각가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새긴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을 만든 자신에게 스스로 긍지와 자부심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 우스운 얘기로 롬바르다인이 이 작품을 보고 롬바르다인의 작품이라고 한데 격분한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이 있는 성당에 몰래 들어가 마리아가 두르고 있는 경대부분에 자신의 사인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저녁나절 성당문을 나서다가 노을이 지는 석양을 보고 감탄을 한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 어디에도 하느님이 ‘어디의 누가 만든 하늘이다’라는 표시를 하지 않았는데 고작 내가 만든 작품 하나 때문에 경솔한 행동을 하다니”라는 생각이 깊이 스치게 된다. 그 후로 그는 어느 작품에도 자신의 사인을 남기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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