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의 이해-권용준교수

미술이란?

 미술이란 무엇인가? - 미술의 시작을 중심으로


* 라스코 동굴 벽화의 발견

프랑스 도르도뉴 자방의 몽티냐크 마을에 위치한 라스코(Lascaux) 동굴은 1940년 9월12일에 이 마을 소년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동굴 벽면에는 빨강 · 검정 · 노랑 · 갈색을 칠한 채색화가 대부분이지만, 홈을 파면서 그린 선각화(線刻畵)도 다수 있었다.


그림 중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이 서로 겹친 것도 있는데, 이는 짐승을 손쉽게 잡으려는 주술 행위였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라스코 동굴의 모습

이 동굴의 벽화는 알타미라동굴 벽화와 함께 프랑코 칸타브리아 미술의 가장 유명한 구석기시대 회화이다. 주된 동굴에 있는 검은 소 는 가로가 5m 이상이나 되는 등, 동물화는 상당한 규모와 크기로 표현되어 있다.


*  미술의 기원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는 매우 사실적이다. 실제 살아있는 듯 한 생동감과 지금이라도 공격해 올 것 같은 역동성을 보인다. 특히 소나 말 등 동물의 표현이 관찰을 토대로 한 해부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왜 믿기지 않은 정도의 사실적 표현을 구사했는가?

이 그림들은 서양미술의 기원으로 서양미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른바 ‘주술론’과 ‘유희론’이 그것이다.


 벽에 그려진 동물의 모습

 

(1) 주술론

사냥을 하기 전 용기를 북돋기 위한 일종의 의식행위를 치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조형 활동으로, 서양미술의 기원을 일종의 주술활동에서 찾는다. 구석기인들은 먹이를 찾아 떠도는 수렵생활을 하였다. 이들이 사냥을 위해 사용한 무기는 고작해야 나뭇가지로 만든 창과 돌도끼, 돌팔매가 전부였다. 이런 무기로 덩치가 큰 들소를 사냥한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들소에게 치명적인 상처도 입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이들에게 사냥은 사람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행위이지만, 상당한 위험이 따랐다. 이런 행위를 하기 전에 용기를 북돋기 위해 벽에 들소 등의 동물을 그려놓고 창이나 돌을 던지는 행위를 행하면서, 사냥에 성공하고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길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사람은 주술의 주관하는 제사장 격의 인물이었을 것이며, 이 사람은 주술을 행하는 이유로 사냥에서 면제되었을 것이다.

 <창에 맞은 들소의 이미지>

 

(2) 유희론

더 이상의 정신적, 육체적 욕구가 없는 안정되고 만족한 상태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행위로서의 조형 활동. 사냥에서 성공한 이들은 배부른 식사 후 더 이상의 욕구가 없었다. 이들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행위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표출된 것이다. 이런 행위는 예술을 일종의 장식으로 보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  왜 사실적인가?

(1) 주술론에 입각한 주장

우리는 무엇인가를 원할 때 기원의 행위를 한다. 그때 원하는 대상과 일치한 형상을 만들거나 준비하게 되는데, 그 형상이 바라는 대상과 일치할 때 즉 사실적 이미지를 지닐 때 기원의 대상이 된다.  사냥 전에 용기를 북돋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데 사냥하고자 하는 실제 동물과 다른 형상의 동물은 주술적인 효용성이 없는 것이다.


 < 벽화의 사실적 이미지>

 

(2) 인지론적 입장

우리의 어린이들은 관념적 조형 활동을 한다. 즉 이들은 표현하려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 대상의 본질을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형상은 비사실적이며 단순한 추상적 형태를 띤다. 이런 조형을 관념적 형상이라고 한다. 우리 시대 아이들의 조형 활동을 보면서 현대인들은 관념적 조형 활동을 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석기인들은 대상의 가치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인지력이 없었다. 즉 단순한 사고를 했던 것이다. 이들에게 대상을 묘사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반면 신석기시대나 이집트시대의 조형 형상은 어떠했는가? 역사는 신석기 시대를 인류의 가장 위대한 혁명기라고 부른다. 이유는 이들은 떠돌이 생활에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정착생활은 농경의 시작을 의미한다. 농경이란 우주의 운행과 사계절의 순환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이는 신석기 인들의 자연에 대한 해석과 아울러 그 법칙을 깨달았다는 비교적 고도로 발달한 인식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시대는 문자를 발명한 시대로, 선사시대에서 인류의 족적을 문자로 남기는 역사시대를 열게 된다. 문자란 인간의 사고를 단순한 기호로 함축해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즉 사상에 대한 개념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신석기나 이집트시대처럼 인간의 인식능력이 고도화된 시대의 조형성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이며 함축적인 형상을 보이게 된다.

 <사냥꾼>, 터키 샤탈휘이크 동굴 벽화, 기원전 6000년 경(신석기시대)

<이집트 벽화>

 

(3) 사실성 - 서양미술의 본질인 사생(寫生)

서양미술은 그 기원부터 사실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사생이 서양미술의 기본 이론이 된 것이다. 이 사생이라는 이론은 르네상스시대에 절정에 이르며, 이후 약 500년간 서양미술을 지배한다. 이 법칙을 거부한 화가들이 20세기의 화가들로 마티스나 피카소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회화의 존재가 사생에 있는 것 즉 눈으로 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생각한 것이란 대상의 가치를 해석하고 그 본질을 파악하는 행위로서, 그 결과를 그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20세기 이후의 회화를 관념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들소>

 

<나는 생각한 것을 그린다. 왜 나의 그림이 단순한가? 이유는 생각이 단순하면 형태는 복잡하고, 생각이 복잡하면 형태는 단순해진다.>(피카소)

 

피카소, <파이프를 문 남자>


* 미술의 가치

이처럼 미술이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간 삶이란 양식이라는 형식적 측면과 아울러 사상이라는 정신적 측면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인간은 예술 활동에 이들의 온갖 삶의 양태를 사실적으로, 은유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담아놓았다.

즉 예술이란 예술가라는 한 개인이 인식하고 파악한 자기 시대의 인간 삶과 정신의 표현으로, 한 지성인의 세계관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을 인지하고 파악하며 해석하는 지적 행위는 결국 좁게는 한 개인의 세계관을 인식하는 것이며, 넓게는 한 시대의 문화와 사상,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작품은 한편 예술가라는 한 개인과의 만남이며, 다른 한 편 한 시대를 풍미한 인간들과의 대화인 것이다. 예술적 표현을 통해 인간 삶 자체를 음미하는 것은 곧 나의 생활과 나의 미래를 준비하는 지적인 노고와 다름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