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비자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그 변화의 방향은 복잡다단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소비자의 니즈가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능은 더 많이, 사이즈는 더 작게, 디자인은 더 세련되게, 가격은 더 저렴하게…. 까다롭다 못해 때로는 모순된 요구를 현대의 소비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신묘년(辛卯年) 토끼의 해를 맞아 2011년 트렌드 키워드를 'TWO RABBITS', 즉 '두 마리 토끼'로 선정했다. 현대의 시장에서 우리가 잡아야 할 것은 단순한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매우 모순된 두 마리 토끼이다. '모순의 두 토끼'를 하나씩 살펴보자.
- ▲ 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Tiny Makes Big(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든다)
"신(神)은 디테일 속에 있다"는 건축가 미즈 반 데 로어의 말처럼 2011년 대한민국 트렌드의 흐름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은 차이'에 주목하고자 한다. 새삼스럽게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대세보다는 작고 미세한 흐름이 2011년 한 해를 구성해 갈 것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평준화되고 생산 경쟁이 매우 치열해지면서, 작은 '차별화 요소'가 더욱 중요해졌다. 더구나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소비의 이해력(consumer literacy)도 높고, 다양한 사회적 매체를 통해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까다롭다. 이제는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쓴 총체적인 서비스와 솔루션이 중요해질 것이다.
수직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업그레이드뿐만 아니라, 주변적이고 사소한 요소를 바꾸어 약간 다른 상품을 출시하는 '옆' 그레이드 현상이 중요해진다.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사업에서도 사용자 친화적이고 직관적인 디자인의 역할이 강해지며, 산업마다 작은 니치(niche·틈새)의 메인(main)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시장 전반에 고객의 사소한 불편도 놓치지 않는 '감동 경영'이 핵심 요소로 등장할 전망이다.
Weather ever Products(변하는 날씨, 변하는 시장)
기상 이변은 이제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 아니라 정례화된 일상이 되고 있다. 단순히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가 아니라 전 지구적 이상 기후(global weirding)의 양상마저 보인다. 이처럼 변덕스러운 날씨 변화에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느냐가 경영의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날씨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 계절상품이나 의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품군에서 날씨 관련 마케팅이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급변하는 날씨와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반응 생산 시스템(Quick Response System)'의 개념이 시장 전반에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특화된 날씨 정보 사업이 주목받고,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 요인을 회피할 수 있는 날씨 관련 보험이나 파생상품이 발달할 것이다.
Open and Hide(개방하되 감춰라)
모든 것을 개방하고 공유하는 '텔올 제너레이션(Tell-all Generation)'의 시대가 왔다. 자신의 일상을 소셜미디어에 거리낌 없이 올리는 사람들을 '미포머(meformer)'라고 하는데,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전에는 감추고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적인 일상까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하게 개방한다.
개방화의 추세는 산업계에도 불고 있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프레너미(frenemy)' 현상이 일반화된다. 프레너미는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로서 기업 간 협력과 적대 관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 기업 간 협력이 확산되며, 산업의 융·복합화와 개방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보 전염병(infodemics)'에 대한 염려도 함께 커질 것이다. 개방화의 흐름 속에서 정보 보안의 강화, 진실된 정보에의 갈증, 정보 윤리의 문제가 큰 사회 문제로 대두할 것으로 전망된다.
Real Virtuality(실재 같은 가상, 가상 같은 실재)
가상이 현실의 경계를 넘어오고 있다. 3D, 4D, 증강현실 등 현실 재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이제 현실이 가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의 가상적 모사는 더욱 현실적이 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통해 이용 가능한 증강현실 서비스가 크게 증가하는 것은 물론, 패션이나 화장 등의 영역에서 자신을 시뮬레이션하는 것도 확산된다. 또한 소비자의 지각 능력과 정보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인터넷 쇼핑은 '소셜 쇼핑'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며, 현실 세계에 가상공간의 논리와 스타일이 덧대어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온라인의 미션 해결형 게임의 스타일과 논리가 적용된 TV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Ad-hoc Economy(즉석경제의 시대)
경제와 트렌드 변화의 주기가 빨라지고 미래의 예측이 불가능해지면서 현재 지향적이고 즉각적인 소비 가치가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즉석경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의 모습보다는 현실에 충실하고 당장에 집중하는 이른바 '카르페 디엠(Carpe Diem·오늘을 잡아라)' 증후군을 보이는 임시(ad-hoc) 세대가 등장한다. 이들은 찰나족이라고 부를 만큼 순간에 강하고, 싫증도 쉽게 낸다.
임시 세대의 등장은 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제품의 순환 주기가 빨라지고 상품의 희소성과 한정성이 중요해진다. 마케팅의 추세도 점점 더 특별하고, 한정적이고, 즉흥적인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즉석경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순간 경쟁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Busy Break(바쁜 여가)
"백수가 과로사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제 한국의 여가는 양적으로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이전과는 다른 성숙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은 단지 편안히 휴식하는 여가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과 경력을 더 높이기 위해 바쁜 여가를 준비한다. 이제 휴가 계획은 자격증 취득, 해외 연수, 성형, 자원 봉사 등보다 진화한 목적을 담게 된 것이다. 여유를 찾으면서도 동시에 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하려는 현대인들의 일상적 태도가 휴식에도 전이된 결과다.
By Inspert, By Expert(직접 하거나, 전문가 맡기거나)
2011년에는 스스로 만들고 창조하며 능동적인 활동을 하는 DIY(Do-It-Yourself) 소비와 전문적이고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누리려는 DIP(Do-It-Professional) 소비가 동시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먼저 DIY의 측면에서 소비자들은 도시에서도 텃밭을 가꾸어 자기가 먹을 채소를 직접 재배하거나, 스스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능동적으로 '소셜 커머스(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미디어를 활용하는 전자상거래의 일종)'에 참여하기도 한다. 나아가 DIP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특히 미용·금융·건강 등 여러 서비스 영역에서 소비자의 모든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주는 '토털 솔루션 서비스'가 주목된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는 이유는 현대의 소비자들이 점점 더 양가적인(ambivalent) 소비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처럼 가격에 대해 정규분포를 이루도록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극단적으로 저렴하게 스스로 하거나, 아주 비싸더라도 전문가에게 확실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Ironic Identity(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제 소비자들은 성별·나이·개성에 따라 규정된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상황과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모한다. 소비를 할 때에는 마치 지킬과 하이드 같은 다중인격자로 변하는 것이다.
여성들 사이에 남성적인 밀리터리룩이 유행을 하고, 남성에게 미용패션 전문잡지의 스타일링 소재들이 히트하듯이, 성별이 뒤바뀐다. 삶의 방식도 모바일 오피스를 구현해야 할 만큼 바빠지면서도, 동시에 느린 삶의 모토가 사회적 트렌드가 된다. 장·노년층들도 자신의 인식 연령을 매우 젊게 가져가면서, 나이를 잊은 소비 행태를 보여준다.
이처럼 다중인격적 소비가 일반화되는 것은 현대의 소비자들이 마치 연극배우처럼 자기의 정체성을 다양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를 전통적인 인구학적 기준으로 분류하고 거기에 의거해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 모른다.
Tell Me, Celeb(스타에게 길을 묻다)
유명인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중문화계의 스타나 사회적 유명인(celebrity)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셀렙 경제(celeb-economy)'라고 부를 만한 트렌드가 형성될 것이다. 스타나 유명인은 이제 먼 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하늘의 별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기준을 보여주는 친구이자 삶의 모델이다.
SNS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유명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삶 위에 그들의 삶을 자연스레 중첩시킬 수 있게 됐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1세대 아이돌(idol) 문화를 접하고 살아온 젊은 세대는 이제 트렌드 형성의 중추로 자라났다. 스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세대인 것이다.
Searching for Trust(신뢰를 찾아서)
실로 불신(不信)의 시대다. 이제 소비자의 신뢰를 차지하는 자가 시장을 갖게 될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대중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의 무분별한 확산을 한편에선 조장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음모론과 과장에 공포심을 느낀다. 실생활에서도 위생과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면서 신뢰에 대한 요구를 더욱 키운다.
개인 경비 등 안전 관련 산업이 각광받고, 건강·위생·항균 관련 상품이 더욱 인기를 끌 것이다. 스트레스 완화 관련 시장도 성장할 것이다.
--기사 스크랩